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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팁

설거지 때문에 화가 날 때

결혼 23년 차 맞벌이 여성입니다.

세 아이를 육아하며 가사를 모두 맡아 일하여도 버겁다 힘들다는 생각을 가져보지 않았습니다.

내가 할일이이거니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더 깨끗하게 어떻게 하면 맛있는 음식이 될까를 고민하며 열심히 보냈었답니다.

최근 들어 아이가 성장하여 저의 품을 떠나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가고 배우자와 나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처음엔 홀가분한 마음에 신혼시절 같다는 생각에 낭만에 살짝 젖어 있기도 하여 잠시 달콤한 시간을 가졌던 적도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저도 나이를 먹는지 몸이 예전 같지 않고 무거워졌어요.

가사로 청소며 세탁물 널기, 밑반찬 만들고 나면 4~5시간은 우습게 훌쩍 지나갑니다.

집안일은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인식 덕분에 저 또한 노동이라 생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였어요.

그랬던 제가 어느 순간부터 '설거지를 왜 매일 내가 해야 하지?'란 의문을 갖게 되었어요.

 

설거지를 왜 나만 해야 하나?

 요리도 하고 식탁에 음식을 차리고 숟가락 젓가락까지 바로 떠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고 여러 번 밥 먹으라고 말을 해야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 배우자의 모습에 짜증이 차곡차곡 쌓여만 갔습니다.

나도 밖에서 똑같이 일하고 집에 오면 쉬고 싶고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요.

시댁에서는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치우는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와 가족들

친정에 가도 각자의 일이 바쁘니 따뜻하게 밥을 차려주는 이가 없으니 내가 차려 나도 먹이고 가족들도 챙겨 먹여 봅니다.

찌개나 국 한 가지 끓이고 반찬 2가지 준비하면 1~2시간은 주방에 서있어야 한 상 준비가 합니다.

밥 먹다 말고 가족들 기호에 따라 가위를 가져다 나르기도 하고 물을 갖다 나르다 보면 밥맛도 느껴볼 사이도 없이 식사시간은 마무리가 됩니다.

모두 당연한 듯 일어나 각자의 자리로 가버리고 나면 남은 설거지가 저의 눈엔 성가시게 남습니다.

노화의 영향인지 식사를 준비하고 나면 지쳐 밥 먹는 것도 힘들 때가 있습니다.

음식 준비로 많은 에너지를 쓰고 나면 뒷 처리는 분담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음식을 준비하니 설거지는 당신이 했으면 좋겠어"라고 배우자에게 저의 마음을 이야기하니 돌아오는 말은 "그런 잔소리 다시는 하지 마라"라며 엄포와 같은 말만 돌아왔어요.

그 말에 울컥 화도 나고 서운하고 서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며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까지 닫게 되었습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집안일은 공평하게 설거지 누가 할래

일본작가 야마우치 마리코 님이 <앙앙>에 연재한 글을 재구성하여 발간한 책이 서점에 진열되어 있었어요.

마침 현재 고민하고 있는 화두를 이 책을 보면 해결이 될 것 같은 기대감에 덥석 집어 구입했습니다.

소재목 하나하나 어쩌면 공감이 많이 되던지요.

책을 직접 읽어 보시기를 추천하면 제가 느낀 부분을 간단히 나누어 보겠습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집안일은 공평하게 설거지 누가 할래 - 야마우치 마리코 지음

남자는 집안일을 세배로 만드는 괴물

여성이라서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일까? 의문을 가졌었다.

남자 여자를 떠나 동거인 중에 집안일을 세배로 만드는 괴물을 있을 것이다.

누구가 되었든 간에...

나의 현실에 너무나 딱 들어맞는 말이라 놀랐다. 나도 이런 생각을 가졌는데 작가도 그렇네

그저 고개가 끄덕 끄덕여졌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여러 상황들이 꼭 내가 마주하고 있는 부분들이라 우리 집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나의 민낯을 낱낱이 까발리는 기분이 든 책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참견은 한다.(게다가 나를 아랫사람 대하듯 한다.)
감사할 줄 모른다.

-설거지 누가 할래 본문 중에-

죽을 만큼 좋았던 남자 친구가 집안일이라는 것 때문에 하루하루 삶이 버겁고 무거워질 때 말이라고 곱게 하면 그나마 덜 서운할 텐데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말 꼰새에 가슴이 답답하게 짓눌려 왔습니다.

저자는 '설거지 현장은 증오를 낳는다'라고 표현합니다.

답답했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는데 저자의 표현력에 감탄을 했어요.

설거지를 안 하면 죄책감이 드는 이유는 뭘까?

남자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내 안에는 그런 '헌신하는 여자'의 세포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집안일은 여자의 의무라고 여기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정말 남자 친구는 구제불능이야.'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나 정말 형편없는 여잔가 봐!'라며 죄책감이 든다는 사실이다.


-설거지 누가 할래 본문 중에-

배우자는 완벽한 사람을 꿈꾸는 것 같다.

나도 완벽하기를 꿈꿨다.

그러나 현실은 완벽하게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 없을 알지 못했기에 오는 오류다.

나의 능력치를 모르고 몇십 년 유경험자인 엄마처럼 일을 하기를 바라는 배우자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였다.

그렇기에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고 쌓여있는 일들을 허겁지겁 치우느라 일상에 허덕허덕거리다 나의 무능함을 탓하고 죄책감에 빠져들게 된다.

가스라이팅 같은 배우자와 주변 가족들의 언행에 또 한 번 무너지고 나를 돌볼 사이도 없이 죄책감에 스스로 나를 뭉개버리며 20여 년의 결혼생활을 지나고 보니 '이건 아니다 도저히 더는 못하겠다. 이러다 내가 죽을 것만 같다.'는 생각에 한계치에 다다른 기분을 느꼈다.

남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데이터를 잘 찾는다.
내가 원했던 반응은 이런 게 아니야!
좀 더 실질적인 대처, 즉 집안일을 함께 더 잘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 건데...

남자 친구는 집에 있는 것만으로 "밥 줘!"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때로는 성가신 존재이다.

-설거지 누가 할래 본문 중에-

나는 오랜 결혼생활에서 당연히 일정한 시간이 되면 밥을 준비하는 일이 나의 일이었다.

아니지 당연히 밥을 차리는 일은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신혼초기 맞벌이할 때의 일이다.

남편보다 늦은 퇴근에 어느 날은 하소연을 하였다.

"결혼을 했는데 저녁을 내가 준비하고 있으니 결혼한 것 같지 않다."라는 말을 했다.

나 보다 나이도 많고 듬직한 오빠라 생각했는데 아이 같은 말을 하는 모습에 당황스럽기도 하였고 '나 형편없는 여잔가봐'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나의 무능함이라 나를 채찍하고 죄책감이 들어 아무 말을 하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참 어리석었다.

남자에게 나와 같은 배려심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남을 돌보는데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한 수 위다.
'돌본다'는 것은 배려하고 마음을 쏟고 정성을 들인다는 것이다.
나는 남자 친구보다는 배려 능력이 뛰어나다.
.......
나와 같은 수준의 배려를 남자 친구도 당연히 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런 배려는 남자 친구에게 고난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니 당분간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으려면 결국 스스로 돌보는 수밖에 없는 걸까?

나의 건강을 지키려면 결국 스스로 돌봐야 한다. 

귀찮아서 대충 먹고 TV를 보다 대충 구부러져 자다 새벽 찬기온에 몸을 부스스 떨며 잠을 깬다.

이런 날은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혼자 내 던져진 기분에 떨어진 체온만큼 차갑고 서러움이 물밀듯 가슴을 파고들곤 한다.

슬픔에 몸서리치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활기차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내 모습을 볼 때면 가끔은 내가 영웅 같다 원더우먼처럼

여자는 남자가 돌봐줄수록 더 빛이 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가 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는 상대는 하고 싶지 않다고 버틴다. 왜 해주질 않는 걸까? 그래서 나는 슬프다.'


-설거지 누가 할래 본문 중에-

한 번은 남편에게 물었다.

"나는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들 배우고 만들어 주고 음식점에서 당신이 좋아하는 메뉴들로 맞춰주고 아이들 챙기는 일이며 집안일까지 노력했는데, 당신은 날 위해 노력한 것이 뭐가 있어"

"나도 배려받고 싶은데 이 집에서 나는 뭐야, 난 노예 같다는 생각 밖에 안 들어"

이 말을 내뱉으며 울컥 눈물이 핑 돌았다.

'나 힘드니 집안일 분담해서 하자'는 뜻에서 한 말인데 돌아오는 말은 공감 제로

"당신이 잘하면 그 복 어디 안 간다. 모두 당신에게 돌아온다."

한 달에 2~3번 시댁을 방문하는데도 어쩌다 내가 몸이 편치 않아 시댁 가기를 거부하면 이렇게 말을 한다.

힘들어 짜증을 낼 때도 "당신이 잘하면 그 복 어디 안 간다. 모두 당신에게 돌아온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내가 잘 못하는 것 같은 죄인 된듯한 생각에 너무 힘들고 서러워 눈물이 앞을 가리는 날에도 차마 더 반박하지 못하고 참고 꾸역꾸역 집안일을 했다.

꾸역꾸역 한 일이 뭐 하나 제대로 될 일이 있나!

서툴다, 어째 일을 그리하냐! 맛이 왜 이러냐! 등과 같은 야유 섞인 말들로 또 상처를 받았었다.

갑자기 의식 없이 쓰러진 일이 있고 나서 이렇게 죽음을 맞이할 수 도 있겠구나 란 생각에 두려움이 일었다.

많이 아프고 나니 이제는 나부터 챙기려고 한다.

나를 돌봐주는 이가 없는데 내가 나를 돌봐야지

충분히 쉬고 잠자고, 먹고 싶은 좋은 음식들을 챙겨 먹는다.

스스로 나를 잘 돌보는데도 허전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오랫동안 방치를 해서일까? 더 많이 돌봄이 필요한가 보다.

결혼이란?

미와 이키히로의 책 [인생 노트]를 오랜만에 펼쳐봤다.
이혼한 사람의 대부분은 성격을 이유로 들지만 서로 다른 부분을 어디까지 타협해 나갈 수 있는지 노력하는 것이 결혼이다.
결혼이란, 노력과 인내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상대에 대한 타협, 인내의 일상, 정신적 갈등 이것이 결혼이다.

-설거지 누가 할래 본문 중에-

'어디까지 타협해 갈 수 있는가? 노력하는 것이 결혼이다'는 글에 설득이 된다.

부부의 인연을 맺고 2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타협점이 무궁무진하게 많은 듯하다.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에 의견의 차이가 있나 보다.

오랜 시간을 한 공간에 머물렀기에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와 배우자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남편은 미안함을 [딸과 나]라는 책의 한 구절을 찍은 사진으로 대신했다.
'나는 배려심이 없는 남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배려하는 데 게으른 남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배려심 없는 남편과 다를 바 없다.'


-설거지 누가 할래 본문 중에-

완벽한 아내가 될 필요 없다

신변의 모든 일을 나에게 일임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없으면 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남편에게 온갖 정성을 다 바쳐 돌봐줄수록 남편은 무능해진다.
......
지나치게 완벽한 아내는 남편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남편을 위해서라도 완벽한 아내가 될 필요는 없다.
......
그래도 치치모(반려묘)가 병에 걸렸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남편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덜 괴롭고 든든했다.
'둘이 있으면 즐거움은 배로, 슬픔은 반으로, ' 뭐 이런 상투적인 말이 꽤 맞는 말이라고 실감했다.

-설거지 누가 할래 본문 중에-

남편이 아프면 아픈 유형에 따라 죽을 끓이기도 하고 마사지도 해주고 하였다.

내가 쓰러져 아플 때 온몸이 돌덩이처럼 굳어 있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돌고 아픈데 마사지를 요청했었다.

슬쩍 등짝 한번 손으로 스치는가 싶더니 스마트폰을 꺼내어 들고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며 낄낄 거리며 웃고 있는 모습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3일을 누워 있으니 내가 먹는 것이 부실한 건 말할 것 없고 매일 라면만 끓여 먹는 남편도 먹는 것이 부실했다.

밥 짓고 반찬 만드는 것이 여자만의 일이 아니다는 것을 아프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무능한 남편을 내가 만들고 있었다 생각되었어요.

배우자란 존재 자체만으로도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건 사실입니다.

부부는 서로 돕고 사는 존재

언제나 함께 건강하면 참 좋겠지만 반쪽이 그렇지 못할 수도 있어요.

서로의 자립과 돌봄을 위해 완벽하려고 하기보다 두루두루 집안일도 나누어하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저는 요즘 남편이 좋아하는 채소 (겉절이) 무침을 가르치고 있답니다.

 

설거지 누가 할래 책을 통해 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조목조목 잘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신혼의 짧은 기간의 경험들이지만 사건마다 느껴지는 감정들을 속 시원하게 잘 표현하고 있어서 대리만족하며 읽었던 책입니다.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니 설거지로 집안일이 공평하지 않음에 갈등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