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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명작 필독선 읽기

논어 온고이지신- 옛 것을 익혀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공자가 말하는 학습에 대한 중요성

남의 노예로 살지 않으려면

공자의 생애주기

위정-4
나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자아를 확립하였고,
마흔 살에는 사물의 도리를 판단할 때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여러 가지 비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일흔 살에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좇아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공자가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나이에 따라 도달한 경지를 압축적으로 밝힌 말이다.
이 말은 워낙 유명해서 이것으로 나이를 표시하기도 하지요.

이립(而귀이 立설립)은 서른 살,
불혹(不아니불 惑미혹할 혹) 마흔 살,
지천명(知 알지天하늘천 命목숨 명)은 쉰 살,
이순(耳귀이 順순할 순)은 예순 살을 가리킵니다.

다시 만난 옛 벗 공자의 논어 - 삼성출판사

출처 두산백과

'곡학아세'란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사전에는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뜻을 굽혀가면서까지 세상에 아부하여 출세하려는 태도나 행동을 의미한다.'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현재 2022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네 대부분은 타인을 많이 의식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남이 보면 뭐라고 하겠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어른들부터가 타인을 많이 의식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영향이 저에게도 남아 있어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실수하면 놀리겠지?'

'나를 우습게 보면 어떻게?'

이런 생각들로 수치심이 먼저 일어나곤 하였어요.

남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내가 정진해야 할 곳에 매진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의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아첨을 떠나 평범한 삶조차도 보이지 않는 눈에 의식해 남이 나를 알아주기 바라며 스스로 노예처럼 살고 있는 듯 느꼈던 때가 있었어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고 불평불만이 많았었는데요.

학이-16편의 공자님 말씀 이 한 구절이 저의 고민을 해결해줍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

남이 나를 알아봐 주길 걱정하기보다 내가 좋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는 말이 격하게  공감되었어요.

내 미흡한 생각에 사로 잡혀 배울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떠나보내지는 않았는지

타인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나의 안목과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자세라 생각합니다.

 

공자 또한 인정과 이해를 바라는 표현을 한 것 같아요.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일것이다"라고 탄식한 것이겠지요.

 

세계 4대 성인중의 한 사람인 공자도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에 탄식을 하는데 평범한 내가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흔 살에는 사물의 도리를 판단할 때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어릴 적 나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성숙하고 능력이 생기는 것인 줄 알았는데 꾸준히 배우고 노력하지 않으면 실력이나 사고가 발달하지 않음을 늦게서 깨닫게 되었어요.

공자는 부지런히 학습하고 정진하여 마흔에 사물의 도리를 판단할 때 혼란이 없었다는 말이 부단한 노력이 있었음을 엿보게 한 대목입니다. 

'예순 살에는 여러 가지 비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40대인 지금은 타인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워 의견 충돌,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있어요.

공자처럼 저도 60대에는 여러 비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지혜를 갖길 기대해봅니다.


일흔 살에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좇아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어느 무엇에도 거슬리지 않는 자유로운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쾌락적인 것에 이끌려 법도를 벗어나는 일들이 있는데 이런 중도를 알고 행동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지만  아마도 평온한 마음을 가진 상태일 것 같습니다.